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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의 행복을 위한 여정의 시작: 관계를 통한 감성을 담은 집
건축주와 함께한 지난한 설득과정의 산물
시작은 다른 필지에 비해 낮은 대지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다. 개발행위가 포함된 경우 한번 허가받은 대지의 레벨을 변경하는 것, 특히 높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해당 필지의 높이가 지나치게 낮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단지 전체를 모델링 해 지난한 협의를 진행했고, 증명하며 설득했다. 그 결과 넓은 6m 도로에서 차량이 진입할 수 있게 됐고, 지하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층고도 확보했다. 지하 옹벽과 지상 1층 사이 가로로 긴 오목한 부분은 단순히 외관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도로변은 건축물이 이격해야 하는 법적 조건이 없기에 건물을 도로에 최대한 붙이고 마당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노력한 결과였다.
마당 그리고 맞춤형 공간: 단독주택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 두 가지
아파트는 더 큰 마당, 외부공간이 있지만, 온전히 가족만의 것이 아니다. 단층으로 컴팩트하게 짜인 구조가 아닌 가족 구성원이 원하는 공간. 이제는 그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산업화, 첨단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풍요 속 빈곤의 시대: 관계를 통해 감성 만들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성은 더는 사치품이 아닌 결핍된 영양소와 같다. 이 감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고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본은 가족 개개인을 위한 적정한 공간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족을 시각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와 서로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설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련된 중의적 공간,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와 교감하고 느낄 때 감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가족에게 간섭이 아닌 자연스러운 교감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 구조는 늘 답이 없는 어려운 고민이지만 해야 한다. 아파트는 통상적으로 넓지 않은 단층으로 개인 공간 분리는 벽체로만 이루어져 독립감이 적다. 반대로 단독주택은 보통 적층의 구조로 가족 간의 소통이 미흡해질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보이드 공간은 사생활 침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블랙 래빗 하우스 Black Rabbit House’는 대지 주변환경과 마당, 내부공간이 적절하게 열리고 닫힌다. 취미실과 가족실 등 커뮤니티 공간, 지하홀, 자녀 파우더룸, 열린 다락 등 전이 공간은 교감과 활동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감성 충만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한다.
4개의 마당: 서로를 잇는 매개체
단독주택은 마당이 필요하다. 단순히 평평한 공간이나 텃밭이 가능한 공간이 아닌 가족의 다양한 바깥 활동을 담고, 가족이 보이고 바라보는 공간이다. 블랙 래빗 하우스에는 안마당, 중정 마당, 선큰 마당, 다락 마당 총 4개의 마당이 있다. 모든 마당은 실내와 외부 자연이 시선으로 연결되고, 기능적으로도 거실, 주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바비큐와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다. 지하 중정 마당은 크지 않지만, 주차장, 현관, 안방, 파우더룸에 빛과 바람을 연결하고 각 공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현관: 자연을 느끼고, 실루엣으로 가족을 먼저 만나는 곳
현관의 분위기는 그 집을 말한다. 지하 공간에 마련된 현관이지만, 마당의 중정으로부터 들어오는 작은 빛과 나무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현관을 통해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가족에게 밝은 기운과 감성을 가져다주기 충분한 공간이다.
1층 거실: 엄마의 사색과 활동 공간
거실은 이제 TV, 소파, 아빠실이 아니다. 마당과 아이들을 보고, 그 너머 작은 숲을 보며 날씨와 시간을 느끼는 공간이다. 거실에서는 요가 등 엄마 중심의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아이들과 소통한다.
안방: 집 속, 또 하나의 집
안방은 누구의 공간이며,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물음에서 시작했다. 주된 기능은 부부, 특히 엄마의 ‘휴식’이며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독립된 집처럼 전용의 정적인 마당과 마당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과 바람,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나무가 있길 바랐다. 완전한 고립이 아닌 필요에 따라 중정으로 마당, 거실, 주방, 현관은을 바라볼 수 있고, 주차장 센서를 통해 퇴근하는 남편을 느낄 수 있다.
1층 식당과 주방: 가족을 위한 중심 공간
가족을 향한 엄마의 마음, 그런 아내를 위한 남편의 마음이 담긴 공간이다. 최근 가족의 중심 공간은 거실에서 식당으로 많이 옮겨왔다. 가족 모두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주 사용자인 엄마를 위한 기능과 동선의 편리함이 필수였다. 엄마의 헌신이 담긴 공간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수납공간, 다용도실, 세탁실, 화장실을 함께 두었다. 엄마는 마당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2층 가족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챙길 수 있다. 가끔 마당의 나무와 바람을 느끼며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가족실: 시선이 모이는 곳
“넓지 않은 한 공간에서 부대끼면 정이 쌓인다.”란 말이 있다. 오랫동안 통용된 말이고,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일도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사람 개개인은 개성을 가진 개체로 독자적인 사색을 위한 공간, 생각과 취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그런 개별 공간이 벽체로 구획되며, 공간 간 거리 유지가 힘들다. 개별적 공간들은 벽체보다는 또 다른 공간을 통해 구획 또는 겹치며 자연스럽게 열린 구조가 만들어진다. 2층 가족실은 딸들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거실, 마당, 다락, 다락 마당 등 내외부 공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선이 연결된다.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친구를 초대할 것이다. 범용적인 가족실보다는 다락, 다락 마당, 마당과 연계된 ‘자녀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세대공감실’이다.
두 딸을 위한 널찍한 파우더룸과 화장실: 먼 훗날 자매의 추억 장소
가끔 왜 안방에만 별도의 화장실이 있을까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모든 공간에 화장실, 파우더룸, 드레스룸, 마당까지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하지만 자원과 공간은 늘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두 딸의 망으로 들어가는 복도 공간을 넓혀 공동 파우더룸과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었다. 2층은 화장실이 두 개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란 후에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파우더룸이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하며 웃던 기억의 장소로 두 딸에게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