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름집은 도심지 단독주택의 유형에 대해 고민했던 프로젝트였다. 21세기 한국인의 삶이 크게 변화한 만큼 집은 어떻게 진화하면 좋을지 상상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단독주택을 짓는 것 자체가 사치일 정도로 밀도와 지가가 모두 높은 강남에서 3세대 동거형 주거를 제안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단독주택은 더이상 보편적인 주거 유형이 아니다. 새로 지어지는 주거의 90% 이상이 아파트이고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 지 오래다. 서울에서도 가장 지가가 높다는 강남은 70년대 개발이 시작된 이래 인구밀도와 가구수 모두 10배 이상 늘어난 지역으로 용적률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언제든 재개발의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주름집이 위치한 강남 교대역 근처는 80년대 초만 해도 주택만 띄엄띄엄 있던 농촌 같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상가나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다행히 주름집이 있는 주변만 단독주택지로 남았는데 층수 2층, 건폐율 50%에 용적률 100%, 용도가 단독주택으로 제한된 전용주택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동네에서도 소음이나 쓰레기, 이웃 간의 사생활 침해 같은 매우 기본적인 문제들 조차 원만히 해결하기는 커녕 이해나 배려도 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모여 살아도 함께 살지 않는 아파트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사생활 침해 문제로 멀쩡하게 잘 있는 옆집 창문에 차면 시설을 요구하는 촌극까지 벌어지는 게 팍팍한 강남의 현실이다.


주름집은 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부모님 세대를 위한 3세대 동거형 단독주택이다. 전통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모든 생활이 하나로 합쳐진, 그야말로 대가족을 위한 집이었다. 대부분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식으로 특히 며느리나 사위에게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전통적인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이 우리에게 쉽게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고 현재는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기피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부모님 세대를 어떻게 모시고 보살펴야 할지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어차피 부모님의 도움 없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집을 구하기도, 자녀를 키우기도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따로 사는 것만 고집하는 대신 함께 살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에 적합한 주거 형식도 같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Section
그렇다면 미래의 대가족을 위한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일단 세대 간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외출할 때나 개인 공간에 있을 땐 프라이버시가 보장돼야 한다. 입구와 계단, 복도를 연결해 외출하거나 방에 있을 땐 굳이 마주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집은 아니다. 부엌과 거실, 마당을 통해 삶을 공유하면 된다. 도로 정면에 마당을 두고 시원하게 트는 대신 벽을 세우고 거실과 마당을 후면으로 숨긴 이유도 마찬가지다. 단독주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마당은 내부를 향해 열려 있고,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이웃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생활이 훤히 보이지 않도록 거실과 마당을 사적인 공간의 안쪽에 둬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무엇보다 마당은 가족끼리 모이고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크기는 작지만 안으로 활짝 열리게 했다. 주름집은 주차 경사로를 한쪽 코너에, 대각선 후면에 마당을 배치해 도심 속 대지에서 법규 등 모든 변수를 고려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집을 포근히 감싸는 ‘L’자형 주택이 완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런던에서 경험했던 집들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 특히 도심에 남아 있는 조지안이나 빅토리안 양식의 주택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산업혁명 이후 높아진 밀도를 수용하기 위해 고안해낸 해결책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선큰을 전면도로변에 내 채광과 환기를 하면서도 직통 계단을 설치해 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직접 거리에서도 내려갈 수 있게 했고, 이웃끼리 서로 측벽(party wall)을 공유해 불필요한 사이 공간을 줄였다. 또한, 도로로 면한 거실과 응접실의 창을 크게 해서 개방감을 둔 것 모두 밀도 높은 주택을 만들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들이었다. 대신 마당은 집 후면이나, 중정울 두어 철저히 사적인 영역으로 만든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외부는 밋밋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내부 공간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런던의 도심 주택은 완전히 다른 유형이었다.


보통 주택은 건폐율이나 용적률에 관계없이 여유 있게 설계하기도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주름집은 달랐다. 일단 50평의 작은 대지 면적에 가족 구성원이 상대적으로 많아, 실내 면적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작은 마당을 알차게 구획해야 했다. 그런데 허용된 건폐율과 용적률을 다 채우고 나면 외부에 정확히 주차할 공간 정도만 남았다. 어떻게 하면 충분한 실내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활용도 높은 마당 있는 3세대 동거형 주거가 될 수 있을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지가 설계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주차를 지하로 내리고 경사로 위에 다용도실과 부엌, 식당을 올려, 외부 공간을 온전히 마당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실내에서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지만, 가장 높은 부엌에서 식당과 거실, 그리고 제일 밑의 마당까지 시선이 활짝 열리게 됐다. 그 덕에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항상 보고 싶다.'던 건축주의 소망까지 이룰 수 있었다.
내부에 생긴 높이 차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각 세대의 영역을 구분하는 장치가 될 수 있게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한 부모님 세대를 입구 가장 가까이에 배치해 이동이 편리하게 했고, 2층에 있는 건축주와 자녀의 영역은 복도를 중심으로 구분된다. 복도를 통해 긴밀히 연결되면서 거실과 부엌, 식당과 마당을 통해서 선택적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함께 있되 서로의 영역을 적당히 분리해 독립성을 만드는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세대간 동거형 주택에 필수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대별로 다른 여가 시간 활용법을 고려하여 건축주 부부의 운동실은 지하에, 최상층의 다락방엔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을, 그리고 주로 부모님 세대가 이용하는 마당은 지상에 배치했다.

주름집의 다른 특징은 내부 공간을 팔각형 모듈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팔각형 공간은 직사각형 방에 비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우선 모든 코너가 모나지 않고 요철이 많아 좀더 아늑한 실내공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외부의 주름들 안에 창들을 배치하여 도로 맞은 편 이웃집 창문을 비껴 마주치게 함으로써 사생활 침해 문제를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채광과 환기를 위해 창의 비례를 위아래로 길게 늘여 실내가 덜 보이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주택의 외피가 안으로 접하며 생긴 주름은 내부에서는 풍성한 공간으로, 외부에서는 채광과 환기, 이웃 간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1석 3조의 해결책이 되었다. 강남처럼 지가가 높아 면적에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도심지는 인체의 장기처럼 외부와 접촉하는 표면적을 늘리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외피의 주름은 허용된 면적을 꽉 채운 집의 통풍과 환기, 채광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충족하면서 사생활 문제 같은 이웃 간의 문제를 위한 해결책이 되었다.
건축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우리 사회가 내놓은 일종의 해결책이다. 현재 서울은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1인 주거는 오히려 더 많아지면서 도심의 주거 밀도는 높아지고 있다. 평균 수명이 연장 되며, 과거 노인으로 불리던 60대가 이젠 젊다고 말할 정도다. 앞으로 점점 더 고령화 될 것이란 전망이 많은데, 서울의 집값이 폭등한 것도 노인이나 사회초년생 같은 1인 가구 수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 다. 이런 현실에서 핵가족만 고집하고 따로 사는 것보단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 주거는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 여전히 공동주택에 비해 도심형 단독주택 유형에 대한 실험과 고민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미래에 다가올 초고령화된 사회에서 대가족을 위한 밀도 높은 단독 주택의 유형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이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