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imetric
이 집의 이름인 ‘수오재’는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이다. ‘수오재’는 조선 후기의 큰 학자 다산 정약용의 큰 형 정약현이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고 또한 정약용의 산문 제목이기도 하다.정약용은 형의 집에 갔다가 그 이름을 들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성찰하고 한편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정말 명문인데, 읽다 보면 저절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만만함과 신중함 사이의 균형에 대해 그리고 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글자를 전각했는데(돌에 새겼는데), 무척 마음에 들게 완성되었다. 어느 날 건축주중 한 사람이 그 글씨를 보더니, 무척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집 이름으로 쓰고 싶다고 부탁해왔다. 이름의 저작권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 200년 전 정약용 선생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좋은 뜻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하며, ‘수오재' 당호를 빌려서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건축주의 이름에도 ‘나를 의미하는 오吾’ 자가 있었다. 나를 지킨다는 것 그것은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수동적인 의미도 있고, 마치 눈을 감고 길을 갈 때처럼 스스로 중심을 잡는다는 능동적인 의미도 있다.
나를 지키는 집, ‘수오재’는 지금은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번화가가 된 홍대 앞 한 복판에 있는 집이다. ‘홍대앞’ 이라는 명사는 원래는 미술대학이 유명했던 홍익대학교 인근을 일컫는 것이다. 이 지역은 서울에서도 가장 극심한 변화를 겪은 곳이다. 이십여년 전만 해도 화실과 작업실 화방들 작지만 분위기 있는 까페들이 있고 골목 안쪽에는 모던하고 세련된 단독주택들이 있었다. 이른바 예술적 인 분위기가 가득한 동네였고 마치 다른 나라, 다른 시간, 속에 들어 가 있는 듯한 낯설음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패스트패션 샵, 까페, 술집과 클럽들이 조용한 골목길과 주택가를 점령했다. 예술적인 분위기 대신 수 없는 욕망과 열기가 가득한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만들어냈고, 밤낮으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사이 주변의 주택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이 집은 술집, 옷집, 밥집, 들이 빈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운데 애매하게 남아있는 말하자면 마지막 표류자 같은 상황이 되었다.

Elevation
‘수오재'의 건축주는 그 곳이 주택가였을 때부터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사이 동네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았고, 아직도 그 동네에 살고 싶다고 했다. 기존의 집도 원래 있었던 단독주택을 헐고 20여 년 전 다시 지은 일종의 복합주택이다. 그 때(1990년대) 부족한 주택 수요에 부응해서 갑자기 동네의 밀도가 높아졌다. 한 가족이 살던집은 허물어지고, 그 위에 세 가족이나 네 가족, 혹은 그 이상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바뀌었다. 그런 집들은 어김없이 빨간 벽돌벽을 둘렀고, 이 집도 그런 유행을 따라 단층 주택에서 4층짜리 상가주택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건축주가 오랫동안 집을 임대용으로만 사용하면서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버렸다. 그 동안 동네는 더욱 활기차고 생생해져서, 집과 동네 사이의 부조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건축주는 살기가 불편한 집을 어떻게든 고쳐서 그 동네로 돌아오고 싶었다 1층은 계속 점포로 임대를 주되 2층은 자신의 어머니가, 3층과 다락층은 자신이 직접 사용할 계획이었다.
독신인 건축주가 사용 할 3층은 2개의 방과 거실 겸 주방이 있었지만. 그 벽을 없애고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침실에 될 4층으로 내부에서 직접 연결되도록 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우리는 50㎡ 정도의 면적에 간략한 주방과 욕실, 세탁기와 다림대, 책상 등 1인주거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골고루 배분했다.
Plan_3F

Plan_2F
80대의 어머니가 사용할 2층은 침실을 별도로 구획하고 작은 거실을 두되 주방과 욕실은 좀더 넓은 면적을 할애했다. 그리고 혹 몸이 불편해질 때 간병인의 거처로 할 작은 방까지 넣어두었다.
건축 주는 홍대 앞의 활기를 무척 좋아하고 포용 할 마음이지만, 길거리 공연이나 행사로 인한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과 불빛은 언제든 차단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창의 바깥에 덧창을 달고, 외관은 기존의 붉은 벽돌을 새로운 상자로 덮어씌운다는 개념으로 백색 목재패널을 둘렀다.
마지막으로 건축주가 원한 수오재라는 이름을 현관 입구와 건물 외벽 상부에 새겼다. 화려한 도시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지키고 마음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집, ’수오재’는 그렇게 완성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