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그루 나무
오래 전 산의 지형을 따라 빼곡히 자리 잡았을 수목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그 장소에 높이와 크기가 다른 인공 나무들이 하나 둘 채워졌다. 이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시작했고 그 거리 사이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잠시 머무르거나 한 낮의 북서쪽 높은 고도위에서 내리쬐는 따뜻한 볕이 이내 고여 버리고 만다. 높이와 크기가 다른 나무들이 드리운 음영의 공간은 우리의 의식을 고요히 마주하게 하거나 때론 하루 종일 굴렁쇠를 굴리며 그림자를 쫓게 만든다. 마치 미로 속을 헤매듯 수없이 연결된 골목을 쫓다 우연히 마주친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자아내는 풍경은 순간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아마도 그것은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이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설 대지엔 오래된 두 그루의 나무와 한 채의 적산 가옥 그리고 쓰러져가는 두 채의 슬레이트집이 있었다. 이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을 환기하고 또 다른 시간을 이 장소에 이식( 移植 )하고 싶었다. ‘초량’이란 장소는 우리 주거의 시간의 단면을 가로지르듯 다양한 유형의 주거, 이를테면 적산가옥, 슬레이트 집, 다가구, 아파트 등각 자 서로 다른 스케일과 보기 드문 밀도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산지의 비탈면을 채워왔다.



자연 현상에서 주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을 통해 주변과 동화되는 camouflage의 현상처럼 우리에겐 거대 자본에 의한 대규모의 획일적인 개발방식이라는 천적으로부터 기존 장소의 고유한 특질들과 소소한 관계를 유지할 작은 스케일의 출발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특히 초량과 같은 구도심에 있어 신축에 대한 태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장소와의 관계에 있어 드러나지 않고 주변의 풍경에 어떻게 스며들지 그리고 개체간의 밀도, 다양한 폭의 골목길에서 느끼는 정감어린 스케일, 그리고 비탈진 경사면을 오르기 위해 설치된 높은 계단과 같은 이 장소에서만 느낄 익숙한 경험들의 재현이 아닐까 싶다.



또한 담장으로서 주변과의 물리적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아닌 마치 자연 숲속 수목들 사이의 능동적 질서에 의해 벌어진 다양한 틈을 통해 주변 골목길들을 안으로 끌어 들여 주변과의 경계를 흐려간다. 재료의 물성과 건물의 형태 또한 이 장소 주변이 오랜 시간 품어왔던 고유성과 친화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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