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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소중하고 비울 수 있어 가치로운 작소비가 作小卑家
이 집은 은퇴를 앞둔 노부부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벚 삼기 위해 작고 소박한 집 한 채를 짓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묻어 나오는 건축주 부부는 평생을 부산에서 나고 자라 왔으며,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익숙한 전형적인 도시인이다. 하지만 주거 방식에 대한 요청사항은 간단했다. 거주하기에 편하고, 자연경관을 담을 수 있는 집이면 된다며 도시에서의 거주방식을 바꾸고 싶어했다.
Concept Sketch
북쪽에서 흘러오는 구절천과 동쪽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이 합류하는 아우라지 나루터에서 다시금 30리를 따라 내려오면 오대천과 합류한다. 그렇게 여러 하천이 만나 비로소 조양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천이 굽이쳐 호를 그리며 만나 어우러지는 곳에 펼쳐지는 넓은 평야, '남평 南坪'이라 불리는 동네에 대지는 자리했다. 대지는 북쪽의 백석봉이, 남쪽의 민둔산, 서쪽 가리왕산과 동쪽 남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둥글게 감싸 흐르는 오대천 남쪽의 넓은 평야 마을, 남평리(南坪里)의 끝자락에 있다. 이렇게 사방이 트여있어 어느 방향으로 앉아도 시선의 모든 풍경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아쉬울 게 없다.
Site Plan
우선, 오랫동안 가져온 '집'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서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적인 집들은 방과 방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간 집, 아흔아홉 간 집이라고 하는 것들은 방의 집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각 방이 거실, 침실, 서재, 화장실 등의 목적에 따라 불리는 게 아니라, 위치에 따라 안방, 건넛방, 문간방 등 목적 없는 방의 집합이 우리의 집이었다. 이 집에서 방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이불을 깔면 침실, 식탁을 놓으면 식당이 되며, 책상을 두면 서재, 침실과 소파를 두면 거실이 되는 불특정한 '비워진 방'의 연속이다.
Section
또한, 방과 방사이는 벽으로 구획되고 문으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쓰임의 방식에 따라 칸막이를 옮겨가며 방을 합치고 또 분리할 수 있다. 모든 방의 칸막이를 열어둔다면 사용자는 방과 방을 지나 시작 지점으로 무한히 회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방'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아닌, '방'에서 다른 '방'으로의 전이인 것이다. 방과 방의 연속, 방들의 집합이라는 형식은 주변 자연과 직접적으로 관계맺음을 통해 통풍과 채광을 자유롭게 하므로 건강하다. 좋은 풍광 좋은 터에는 이런 집이 제격이 아닐 수 없으며, 사용자에게 즐거움이 될 것이다.
Plan_1F
현관에 들어서 첫 칸막이를 열면 사용자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사실 어느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만, 그 여정의 시퀀스는 항상 다르기에, 고민되는 단계다. 중앙의 작은 중정을 기준으로 소파와 TV가 있는 방인 거실, 8인용 테이블이 있는 방인 식당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방과 방 너머, 마당을 지나 오대천이 흐르는 소리 너머 가리왕산의 나무들이 부대끼는 풍경까지 담아낸다. 주방에서 식당을 넘어 안방의 칸막이를 젖히면 마당을 즐기며 다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는 큰 사랑채가 있다. 건넛방의 칸막이를 젖히면 단풍나무의 붉은 색채로 가득한 작은 중정을 병풍 삼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사랑채가 된다. 이 모든 방이 각각의 다른 방에 대해 서로 독립적인 동시에 함께 모여 불특정한 비움의 방으로 변한다.
Axonometric_Meterial
이 작은 집을 준공할 즈음 건축주 부부는 이름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작소비가 作小卑家'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작고 낮게 지은 집', 의미 그대로 작아서 소중하고 비울 수 있어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