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사
ⓒ윤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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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e Plan
Diagram
충남 청양의 다락골, 최양업신부의 탄생지에 지은 작고 소박한 경당(經堂, chapel)이다. 경당은 그가 마지막을 지내면서 은신한 죽림굴(竹林窟)의 모습을 닮았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崔良業, 1821~61)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한국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다. 한국천주교회는 순교로 신앙을 증언한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피의 순교자’, 당대의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조선 팔도를 누빈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그는 2016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아 ‘가경자(可敬者, Venerable)’로 선포되었다. 한국에서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의 시복을 추진한 것은 최양업 신부가 처음이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전교구는 청양의 생가터인 새터(新垈)에 최양업 신부를 기념하는 경당을 짓기로 했다. 경당은 청양군의 관광진흥사업으로 진행 중인 ‘다락골 관광자원 정비사업’의 핵심이 될 곳이기도 하다. 줄무덤이 있는 다락골 성지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겐 성지순례의 중요한 코스로, 청양군에는 역사적 인물의 거점으로 관광자원의 역할을 해왔다.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에 경당을 짓는 것은 그의 정신을 기억하는 일이자 지역의 거점을 제대로 정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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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ation
Elevation
“최양업 신부님에게 잘해드리고 싶어요.”
다락골 성지의 김영직 주임신부는 프로젝트를 의뢰하며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한다. 전국에 있는 103명 성인의 성지는 이미 160여 곳을 넘어섰다. 이곳은 다른 성지(聖地)와 어떻게 다른가. 이곳에서 그를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건축적 대답이 필요하다. 생가는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는 땅, 그리고 큰 감나무 한그루. 그 모습이 이곳 성지의 방향 같다. 큰 집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가능한 작은 집을 짓고, 터를 그대로 비운다. 경당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곳의 풍광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를 기억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가 걸었던 밤길의 어둠처럼 빛 보다는 찬란한 어둠이 자리 잡은 곳이 더 적합하다. 그래야 경당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장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윤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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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Detail Section
2023년 4월 15일, 최양의 신부의 사제서품기념일에 맞춰 경당을 개관했다. 그 행사 자리에서 집을 만든 이야기를 했다. 이곳을 설계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가 마지막을 지낸 울주군의 죽림굴을 찾았던 기억이다. 동굴은 그가 경신박해(1860년)를 피해 지냈던 곳이다. 상상이나 흔적이 아닌 그의 삶을 닮았던 온전한 장소는 오직 그곳에만 있었다.
“5월 말 토요일 11시였어요. 오르막 산길을 40분간 걸어 땀이 범벅되었어요. 그날 온도는 24도, 동굴 입구는 14.5도가 찍혔죠. 동굴 안은 6.5도에 습도 40%. 바위 표면은 -1.5도였어요. 5월 말인데도 말이죠. 숨을 돌리자 동굴의 깊은 어둠에 눈이 점점 순응을 시작했죠.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10룩스(lux). 동굴 앞은 초록의 참나무 숲이 가득했고 동굴은 고요했어요. 아… 하고 소릴 던졌어요. 소리는 울림이 없이 짧게 돌아 다시 귀에 닿더군요. 거친 표면 때문이죠. 조금 뒤 바람이 불자 숲의 소리가 세찼어요. 사그락사그락 쏴아아. 동굴 안에선 38데시벨(dB) 정도의 소리가 묘한 느낌으로 들렸어요. 그러나 두려움 속에 피신 중이던 당신이라면 나졸들이 그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닐까 흠씬 놀랠만한 정도의 소리였어요. 토마스 신부는 이런 긴장과 서늘함으로 여기서 3개월을 보내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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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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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동굴은 20평 남짓, 폭 4.5m 깊이 13m, 높이는 3m가 안 되는 길쭉하고 경사진 곳이에요. 특별한 건 제일 낮은 곳에 제대가 있어요. 신자들을 올려다보며 미사를 드린 곳 같아요. 마흔 살 최양업이 지내며 느꼈던 온전한 흔적이 그곳에 있었어요. 경당의 제대는 그곳에서 생각을 확신했어요. 섬기는 자의 자세로 낮은 위치에 두는 것이 맞겠구나. 새터는 양업이 태어나서 6년을 보낸 곳이에요. 생가터에서 보면 그가 바라봤던 풍경, 느꼈던 바람과 새들의 지저귐은 200년이 지났지만 그대로예요. 부모인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의 오랜 삶의 터전이기도 하죠. 저는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여섯 살 양업이 바라본 풍경을 보면서, 40살 토마스 신부의 마지막 흔적인 죽림굴의 느낌을 전달받았으면 했어요. 마지막을 지낸 그 동굴처럼, 외부의 변화와 무관한 공간 속에서 자신과 그분을 만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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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짧지만 길고 어두운 통로로 눈이 적응하는 시간을 위해 만들었어요. 동굴 속 어둠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요. 제대의 자리는 죽림굴의 상황과 태도를 닮게 낮은 자리로 만들었고, 천정엔 그가 밤길을 걸으며 만났던 조선의 별자리 ‘천상분열열차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새겼어요. 조선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를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1년간 9만 리를 걸었던 최양업 신부의 밤길 안내서이자 벗이에요. 지도의 가장 안쪽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이 있고, 방위별로 283개의 별자리와 1,467개의 별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표시되어 있어요. 제대 위 천정에 이 지도를 새겨서 어둠을 걸었던 그의 발걸음과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그 아래에 놓은 돌 제대는 다락골성 지의 사제관 마당에 박혀있던 돌이에요. 제대를 만들 돌을 고민하던 때 ‘이건 어때요’라며 신부님과 사무장께서 툭하고 말했죠. 돌은 운명처럼 이곳에 쓰이기 위해 기다린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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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iling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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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기념경당은 이렇게 죽림굴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했다. 동굴의 아늑함, 거친 내부와 찬란한 어둠, 낮은 곳에 위치한 제대의 모습까지를 닮게 했다. 생가터는 비워두고 가능한 낮고 작은 집으로 그곳을 바라보는 건축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들어서며 만나는 긴 처마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경당의 지속성을 위해 중요한 장치이자, 생가터를 바라보는 틀로서 한국의 처마를 본뜬 것이다. 축복식 행사 중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사람들은 이 처마 아래에서 미사와 성가를 이어갔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좁은 통로를 여러 번 꺾어 경당 내부에 닿는 동안 암순응한 눈으로 어둠의 공간을 맞게 된다.
Sketch
Sketch
통로의 양쪽 벽은 대나무 문양을 찍어서 만들었다. 직경 60mm의 대나무를 쪼개고 잘라붙여서 만든 문양은 고립된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한계와 제한된 비용을 고려해 금속형틀 대신 꼼꼼한 수작업의 공정을 거쳤다. 벽체의 안팎에 연속된 이 수평의 흐름은 제대를 한 바퀴 돌아 이어진다. 그렇게 만나는 이 경당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로서, 풍광과 하나 된 집으로서, 밤길을 걸으며 고독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했던 최양업 신부의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우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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